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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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의 프로야구단. 내셔널 리그 중부 지구 소속. 연고지는 세인트루이스. 팀명인 카디널스[5][6] 는 홍관조라는 뜻이며, 약자는 '''카즈(Cards)''', 팀 컬러는 빨간색이다.[7]
역대 팀 성적 링크
메이저 리그에서도 손꼽히는 성적을 보유한 명문 구단으로, 메이저리그에서 뉴욕 양키스 다음으로 우승을 많이 차지했으며,[8][9] '''내셔널 리그 구단 중 월드 시리즈 최다 우승팀'''이다. 또한 월드 시리즈에서 양키스 상대로 5전 3승 2패를 거두면서 양키스와 2번 이상 만난 팀들 중 상대 전적이 우세한 '''유일한''' 팀이기도 하다.[10] 야구 팬들은 카디널스의 화려한 가을 야구 역사에 경의를 표하며 '''가을 좀비'''라는 별명을 붙였다.
전통의 강호답게 긴 역사를 통틀어 로저스 혼스비, 디지 딘, 스탠 뮤지얼, 밥 깁슨, 아지 스미스, 알버트 푸홀스 등 전설적인 대스타들을 배출했는데, 이들이 특정 시기에 몰려 있지 않고 20세기 초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등장했다는 것이 카디널스의 육성 능력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17회의 내셔널 리그 MVP'''를 배출했는데, 이는 내셔널 리그 1위의 기록이다.
국내에서는 양키스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보스턴 레드삭스에 비해 인기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편이나 미국에서는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전통의 명가이자 팬들과 선수들의 존경을 받는 팀이다. 또한 빅마켓이 아님에도 2010년대 평균 관중 순위 3위[11][12] 에 오르며 '''명실상부한 인기팀'''임을 입증했다.#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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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모저모
3.1. 구단 운영
2000년대 후반과 2010년대에 들어서 자체생산 신인들이 쏟아져 나오자 카디널스의 구단 운영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 특히 자체 육성 선수로 로스터의 대부분을 채우고도 월드 시리즈에 오른 2013년부터는 이런 분위기가 거의 일반화되는 분위기이고, 카디널스가 명문으로 유지하는 배경은 탁월한 팜 시스템 덕분이다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으며 나무위키에도 그런 이야기가 많은데...
2000년대 초중반만 하여도 카디널스는 '''팜이 허접한 팀 하면 다섯 손가락에 꼽히던 팀'''이었다. 이 이유는 당시 카디널스의 팀 전력이 우승경쟁자에 미치지 못했기 대문에 전력보강을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고 여기에 박차를 가한 것이 단장이던 월트 자케티의 지론인 '''유망주는 유망주일 뿐이다'''였다. 자케티는 팀의 유망주들을 트레이드 해서 즉시 전력감을 모으는 경향이 있었고, 이게 감독 토니 라 루사와 조화가 되면서 팀의 전력을 일약 우승 후보의 위치로 자리잡게 만들었다. 즉 이 시기의 카디널스는 드래프트에 적지 않은 돈을 쓰지만 그렇게 특색이 있는 드래프트를 했던 것은 아니고, 그렇게 모은 하이 실링 유망주의 상당수를 다른 팀의 즉전감과 바꾸는 형태의 팀이었다. 이 과정에서 2군 육성능력도 착착 떨어져갔다. 당시에는 크리스 카펜터처럼 다른 팀에서 버려버린 선수나 데릴 카일, 우디 윌리엄스 같이 한물 가버린 선수들을 잘 다듬어서 쓰곤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지시한 구단주 빌 드윗 주니어는 '''지속가능한 성공모델'''을 위해서 개혁을 준비하고 있었고, 이는 자케티의 모델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던 2003년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변화에 선봉장으로 등장한 인물이 당시 부단장 존 모젤리악과 스카우팅 디렉터 제프 러나우[13] 로, 이들은 세이버매트릭스의 접목을 시도한 인물들이기도 하다. 2007년은 이 두 세력이 정면 충돌한 시기로, 구단 전체가 반으로 쪼개져서 대립이 이뤄졌다. 그리고 여기서 패배한 것은 월트 자케티였는데, 일단은 마크 멀더를 영입하면서 댄 하렌을 보낸 트레이드가 완전한 실패작으로 결론이 나왔고[14] , 팀 성적 역시 승률 5할을 밑돌았기 때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이전에 자케티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라루사 감독마저도 자케티와 사이가 벌어져서 자케티로서는 버틸 재간이 있을 수 없다. 결국 2007 시즌 종료 후 자케티는 해임되어서 지구 라이벌 신시네티 레즈의 단장으로 옮겨갔고, 카디널스의 단장직은 임시단장을 거친 모젤리악이 승계하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의 진정한 승자는 다름아닌 구단주 빌 드윗 주니어였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구단주 빌 드윗 주니어, 단장 존 모젤리악, 스카우팅 디렉터 제프 러나우, 감독 토니 라 루사 체제가 2010년대의 현행 카디널스를 만들어냈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이 시기에 카디널스의 팜과 드래프트 성공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가 되었고, 다른 구단과 차이를 보여준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야구인으로서 성실함, 자기관리를 포함하는 '직업윤리'(Work Ethic)의 강조이다.[15] 사실 이 야구판 '직업윤리' 의 화신이었던 인물이 전 감독 토니 라 루사였다. 라루사이즘의 창시자로 꼽힐 정도로 혁신적인 전술가인 동시에 보수적인 면모도 있었던 라 루사는 이걸 무척이나 중시했던 경우로, 검증된 미래의 올스타로 꼽히던 콜비 라스무스와 비교해서 경기력이나 포지션 활용도에서의 평가는 떨어졌지만 야구인으로서의 성실함은 좋았던 존 제이 같은 선수를 중용하는 운영을 했다.[16] 그런데 이게 성과가 괜찮게 나오고, 반면에 신체적 기술적 능력만 보고 뽑았던 선수들의 성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드래프트 전략마저도 이쪽으로 선회하게 되었다. 모젤리악과 러나우를 굳이 분류하자면 세이버메트리션에 가까운 스타일인데, 여기에 성실함의 강조가 더해지면서 드래프트 경향성이 확정된 것이다. 여기에 어차피 되지 않는 부분(높은 기대치 낮은 실력, 높은 잠재력 낮은 활용도)의 비중을 줄이고 잘하는 부분에 집중한 결과 마이너 팜이 저평가받는 것에 비해서 메이저리그 안착률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이 드래프트와 팜 시스템이 갖춰지면서 팀의 강점으로 떠오른 부분이 재정적인 부분이다. 위의 전략으로 팀의 핵심 선수들과 중하위권 신예들의 자체생산 선수들로 채울 수 있게 되면서 부가적인 지출을 확 줄일 수 있었고, 여기에 더해진 것이 바로 페이롤 유동성의 강조이다. 초장기 계약을 맺은 선수가 먹튀가 되면 팀이 휘청거리는 상황에서, 바닥을 기는 중계권료로 버티는 카디널스의 경우는 위험요소를 배제하기 위해서 페이롤 유동성을 강조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그러면서도 우승후보의 지위를 유지하게 해주는 것이 앞서 언급한 팜 시스템으로, 팜 시스템을 통해서도 전혀 메울 수 없는 부분과 부족한 부분에만 단기적으로 적정한 금액의 FA를 영입해서 우승 도전권(contender)의 순위를 유지하는 전략을 시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게 어느 정도 자리 잡은 시점에서 보자면, 팀에 생길 수 있는 모든 악재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지지 않는 이상 팀이 망하기도 어렵고, 설혹 그런 악재가 터진다고 하여도 그로 인한 슬럼프가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을 수 있는 구조가 성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카디널스의 구단 운영이 메이저리그 모든 구단의 모범이라고 불리는 것은 사실 이 때문으로, '''현재 우승후보감 지위를 보장하는 팀 전력과 미래의 성적을 기대케 하는 팜 시스템, 그리고 이걸 받쳐주는 재정적인 부분이 모두 안정적이자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체제'''인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단장인 모젤리악,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걸 사실상 주도하고 기획한 구단주가 버티고 있기 때문에 유지가능한 성적이 가능한 것. 덕분에 메이저리그 구단들 중 가장 많은 영업이익(2014년, 7360만 달러)를 남기고 있다. 다만 2016년부터 2018년까지는 덱스터 파울러 등 이런저런 패닉 바이로 인해 돈도 많이 날려보긴 했지만 2019년을 기준으로는 그런 식의 현상도 거의 나오지 않고 있다.
덕분에 이 팀의 특징은 별 기대 안 하던 하위 라운드 유망주가 성공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너무나도 유명한 성공사례로 '''알버트 푸홀스'''(13라운드 402순위 지명)가 있고, 그 외에도 맷 카펜터(13라운드 399순위), 토미 팸(16라운드 499순위) 등이 있다. 토미 팸은 마이너 생활 9년만에 첫 데뷔를 한 노망주이기도 했다. 노망주 중에는 무려 10년 동안 마이너 생활을 하다 27세가 돼서야 메이저리그 첫 데뷔를 하고 28세가 돼서야 빛을 본 호세 마르티네즈(국제계약)도 있다.
드래프티중에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맷 아담스(23라운드), 하이메 가르시아(22라운드), 트레버 로젠탈(21라운드), 케빈 시그리스트(41라운드), 루크 그레거슨(28라운드) 등도 있다. 하지만 2010년 이후로는 하위 라운드는 잘 보이지 않고 많이 내려가도 3라운드나 4라운드 정도 아래까지 내려가지는 않는 편이다. 2020년 기준으로는 핵심 선수들 중 1라운드 선수들의 비중이 상당히 높은 것은 덤.
저평가된 NPB산 FA 오승환, 마일스 마이콜라스를 싼 값에 물어와서 재미를 보기도 한다.
물론 이런 훌륭한 선수 육성과 드래프트 시스템을 가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게도 흑역사는 있다. 세인트루이스에 지명받아 1965~1971년까지 뛰면서 77승을 거뒀지만 투고타저 시대에 3점대 평균자책점에 밥 깁슨이라는 에이스와 비교해 더는 성장할 수 없고, 기대치를 낮게 봐 페이롤을 아낄 겸 해서 한 좌완 투수를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트레이드 시켰는데, 그는 훗날 명예의 전당까지 입성한 스티브 칼튼으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대표적 실책으로 평가받는다. 그 외 통산 153승 투수 댄 해런이나, 아직 누적이 덜 쌓이긴 했지만 2020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와 2020년 월드 시리즈에서 대활약하자 이 선수를 왜 알아보지 못했냐고 카디널스 팬덤에게 집중 포화를 맞은 랜디 아로자레나까지...[17]
2020년 현재까지도 이러한 기조는 꾸준히 유지를 하고 있지만 2016년부터 2018년까지 FA는 FA대로, 포스트시즌 진출도 3년 연속으로 실패를 해 본 경험을 맛봐서 그런 것인지 2018년을 기준으로는 핵심 유망주는 사수하면서, 줄 수 있는 유망주는 주는 식으로 어느 정도의 순위 유지형 트레이드로 적절하게 전력 보강을 하기도 하는 편이다. 그 일환으로 트레이드로 영입을 해서 FA가 되기 전까지 2년간 팀의 중심 타선을 지탱해 준 선수가 마르셀 오즈나였고, 고질적인 1루수난을 해결하기 위해 루크 위버, 카슨 켈리, 앤디 영과 밸런스 픽까지 내주면서 데려온 선수가 바로 '''폴 골드슈미트'''였다.[18] 그리고 모젤리악이 여기에서 그 동안에 고수했던 정책을 한 번 깨는데, 바로 폴 골드슈미트에게 5년간 1억 3천만 달러 규모의 연장 계약을 통 크게 쏜 것이다.
3.2. 팬덤과 라이벌리
전통적인 강호에 걸맞게 대부분의 세인트루이스 시민들이 야구를 좋아하며, 또한 구단만큼 팬들이 세이버매트릭스에 관심이 많아 토론이 활발하기로 유명하다. 물론 다저스, 컵스, 레드삭스, 양키스에 비할 정도로 미친 열기를 보여주진 않지만 꾸준하게 지속적으로 팬들의 지지를 받는 구단 중 하나. 실제로 세인트루이스는 다른 동네와는 다르게 미식축구와 농구보다 야구와 아이스하키의 인기가 더 높은 지역이다. 2013년 이후 LA 다저스에 이어 꾸준히 경기당 평균 관중 2위를 차지했고 2001년 이후 평균 관중이 4만명 전후로 세인트루이스의 규모를 생각한다면 실로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팬들의 매너가 좋기로 유명하다. 보통 "우리동네 팀 아니면 다 나쁜 놈. 저놈들이 이겨서 희희낙락하는 꼴은 눈에 흙이 들어가도 못 봐!"의 정서가 대부분인 미국 프로야구에서 자기 홈구장에서 우승을 확정지은 '''상대 팀'''에게 관중들이 격려와 축하의 박수를 보내주는 거의 유일한 팀.[19] 단, 오랜 세월의 전통적 라이벌인 시카고 컵스에게만은 얄짤없다. 아무리 매너 좋은 카디널스 팬들도 시카고 컵스와 그 팬들에게 만큼은 야유와 쌍욕이 오고간다. 1998 시즌 새미 소사와 마크 맥과이어의 홈런 경쟁이 상당히 치열했던 것도 이런 분위기 때문이었다. 여담으로 1980년대에 컵스가 가끔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을 때 그때까지도 컵스는 낮경기만을 고집해 야간경기를 카디널스의 홈구장 부시 스타디움에서 가질 뻔하기도 했다. 그때 다른 팀 홈구장에서 경기를 했다면... 2000년대 후반 들어 컵스가 영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오히려 카디널스 팬들의 동정을 받는 지경이 되자 메인 라이벌리는 밀워키 브루어스, 신시내티 레즈로 옮겨간 상황이었는데, 2015년 부활한 컵스가 카디널스와 각축전을 벌이는 가운데 대놓고 신경전을 걸자 동정을 보내던 카디널스 팬들도 '역시 니들이 그럼 그렇지.'라며 다시 학을 뗐다. 그리고 여기에 베테랑인 맷 홀리데이가 최근 컵스전에서 헤드샷 맞고 손목 맞고 해서 분위기가 좀 많이 살벌해졌다. 다만, 이와 별개로 제이슨 헤이워드가 팀을 노인정 취급 비슷하게 발언하고 컵스로 이적하면서 팬들이 인종적인 모욕을 가하는(...) 문제도 발생한 것도 있고, 다른 구단에 비해 시청하는 백인층의 비율이 다른 인종에 비해 워낙 높고 실제 2000년대에는 인종이 다른 선수들끼리 경기장 밖에서 남남처럼 지냈다는 소문도 있을 정도라 아예 비판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2016년 월드 시리즈에서도 클리블랜드를 응원했으며, 존 햄 같이 프로그레시브 필드에 가는 카디널스 팬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클리블랜드가 떨어지자 바로 좌절.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라이벌리가 본격적으로 불탔던 것은 2011 시즌이었다. 당시 카디널스와 맥주네 두 팀은 시즌 내내 지구 우승 타이틀을 놓고 다퉜고 결국 포스트시즌 NLCS에서도 만났다. 이는 1982년 월드 시리즈 이후에 만나는지라 많은 관심을 얻기도 했다. 최근 카디널스와 맥주네의 라이벌리에 대해 올드 스쿨의 야구를 지향하는 카디널스와 악동 이미지를 내세우고 있는 브루어스의 대립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또한 조 토레 감독은 "자주 격돌하노라면 태워버려야 할 장작이 많이 생기기 마련" 이란 얘기를 하기도.
신시내티 레즈와는 전성기가 서로 엇갈리는 통에 라이벌리가 형성되지 않았지만[20] , 2010년대 들어 두 팀의 관계는 급격히 험악해졌다. 그 원인은 TLR와의 힘겨루기에서 밀려나 카디널스를 떠난 월트 자케티 당시 레즈 단장이 많이 데려간 카디널스 출신 선수들 과 '''브랜든 필립스'''의 핵이빨. 자니 쿠에토같은 경우도 제대로 찍힌 케이스이다. 다만 이와는 별개로 선수들간의 특별한 원한이니 이런 건 없었고, 지금은 쿠에토도 자이언츠로 떠났고 필립스도 이빨 터는 횟수가 많이 줄면서 옛날 이야기 정도로 치부한다. 그러나 쿠에토는 지금도 용서 못한다는 팬들이 많고, 심지어 FA가 풀리고 쿠에토가 샌프로 이적이 확실해지기 전에 카디널스와 관련해 '저놈은 목숨 각오하고 와라'라고 말했을 정도. 이유는 해당 문서 참고.
인터리그 라이벌로는 캔자스시티 로열스가 있다. 세인트루이스와 캔자스시티는 주 경계에 걸친 분단도시라 양쪽을 잇는 인터스테이트 하이웨이 (고속도로) 이름을 딴 I-70 시리즈로 불린다.[21] 팀 성향도 비슷하고 특유의 늪야구(...)를 구사하는데 있어 아주 죽이 잘맞아 종종 좀비 대전으로 꼽힌다. 또다른 라이벌로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있는데, 이쪽 역시 불타는 가을 본능과 포스트시즌 좀비 모드로 인해 카디널스와 맞물려서 2011년부터 내셔널리그 패권을 두고 번갈아가면서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22]
한국에서의 팬 숫자는 MLB팀들 중에서도 나름 상위권을 찍어주고 있다. 꾸준한 호성적과 '고효율' 이미지[23] 가 MLB 팬들에게 크게 어필을 한 것으로 추측된다. 사실 다른 것보다도 2000년대를 주름잡았던 알버트 푸홀스를 포함해 메이저리그 공수를 주름잡던 Murderer's Row의 라인업, 대럴 카일과 릭 엔키엘의 비극적인 스토리, 모리스 - 카펜터 - 웨인라이트로 이어지는 에이스, 명장 토니 라 루사, 우디 윌리엄스나 제프 서판 앤디 베네스 등 왕년의 투수들을 고쳐쓰기를 통해 좋은 성적을 거두게 한 공신이었던 투수코치 데이브 던컨,[24] 2006/2011년의 기적적인 우승 등 꽤나 드라마틱한 소재가 많은 편이라 코리안리거 없던 시절에도 redbirdsnest 같은 블로그 등을 포함해서 팬층이 꽤나 단단한 편이다. 물론 한국인 선수가 뛰고 있는 다저스나 텍사스보다는 한참 팬수가 딸린다(...). 굳이 한국인 선수가 뛰고 있지 않은 상태였지만 양키스나 보스턴 역시 한국에서 카디널스보다 팬층이 많다. 다만 한국인 선수 혹은 소속팀과 이런저런 악연이 묘하게 존재한다. 당장 유명한 것만 나열해 봐도...
1. 1999년. 박찬호에게 한만두를 대접.
2. 2013 정규시즌. 신시내티와의 지구 우승 경쟁. 이때 신시내티에는 추신수가 있었고, 추신수는 카디널스를 상대로 맹타를 휘둘렀다.
3. 2013 포스트시즌. NLCS에서 다저스와 격돌.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포스트 시즌 첫승을 헌납.
4. 2014 정규시즌. 다저스와 빈볼 시비.
5. 2014 포스트시즌. NLDS에서 다저스와 재격돌.
6. 2014 시즌 이후. 지구 경쟁팀인 피츠버그가 강정호 영입. 그리고 강정호는 메이저리그 커리어 동안 카디널스를 여러번 괴롭혔다. 첫 홈런, 첫 결승타를 선물했고[25] , 2016 시즌 복귀전에 연타석 홈런을 내주며 강정호의 복귀전을 빛내주는 등[26] , 강정호에게 많이 당했다.
이러한 악연 때문인지 팬들도 자조적으로 매국 구단(...) 드립을 치기도 한다. 심지어 해야갤에선 이미 공식.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서로간에 농담으로 하는 말이며 이 팀을 응원한다고 매국노가 되지는 않는다. 다만 매국구단이라는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의 여부는 개인마다 다르니까 가려가면서 농담하자(...) 다저스가 정의롭거나, 카디널스가 악하다 단정할 수 있거나 단정해서는 안 될 일이고, 그 반대 역시 안 될 일이다. 어쨌든 오승환이 2016~17년동안 이 팀에서 활약했고 2020시즌 부터 SK 와이번스 소속이였던 김광현이 뛰게 되어 매국 드립은 사라질 수도 있다.
다만 한국 팬덤은 팀과는 별개로 팀의 전력에 비해 역레발이 너무 심하다고 까이곤 한다. "카디널스의 팬이 역레발을 칠 정도면, 우리 팀은 도대체 뭐냐?"는 의견. 물론 카디널스의 팬 입장에선 좀 억울한 까임인데, 스포츠 구단의 팬이 자신의 구단 전력에 100% 만족한다는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당장 KBO 리그에서 삼성 라이온즈가 4년 연속 통합우승을 하던 시절에도, 삼성팬들은 나름대로 팀 전력에 꾸준히 불만이 있었고 역레발을 칠 수밖에 없었으며 두산 베어스, SK 와이번스도 시즌만 끝나면 호성적에도 불구하고 우리 팀 전력 약해졌다면서 푸념을 털어놓는다. 특히 한국내에서는 카디널스의 이미지가 (주로 다저스와 비교되며) 팬 입장에서 부담스러울 정도로 '모든게 술술 잘 풀려서 걱정이 없는 팀'으로 포장되는 감도 있기 때문이다.
한편 2016년 드디어 마이너 갤러리의 개설에 힘입어 맨체스터 시티 FC,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와 함께 세인트루이스 갤러리가 생겨났다! 다만 글자 제한 때문에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갤러리'가 아니라 '세인트루이스 갤러리'로 생성되었다. 때문에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세인트루이스 블루스를 동시에 다루는 갤러리를 지향하고 있다.
번외로 일본인 선수인 아오키 노리치카도 2013년 밀워키 시절 카디널스 상대로 강한 모습을 보였다. 로열스 시절인 2014년에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못했지만.
3.3. 홈 구장
3.4. 영구결번
- SL. 로저스 혼스비(Rogers Hornsby): 통산 0.358의 타율과 2930안타, 301홈런 1584타점을 기록한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2루수.[27] 그가 뛴 시대에는 등번호가 없었기에[28] 결번 없이 기념만 하고 있다.
- 1. 아지 스미스(Ozzie Smith): 역사상 최고의 수비를 자랑하는 유격수. 별명은 오즈의 마법사. 압도적인 수비력을 바탕으로 1980년대 카디널스를 이끌었고, 90%가 넘는 득표율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 2. 레드 션다인스트(Red Schoendienst): 통산 2,449안타를 쳤던 2루수로, 선수-코치-감독으로 무려 4번의 월드 시리즈 우승[29] 에 기여했다. 이후 베테랑 위원회의 추천으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으며, 2018년 6월 6일에 향년 9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 6. 스탠 뮤지얼(Stan Musial): 통산 타율 0.331와 3,630안타, 475홈런 1,951타점 그리고 3번의 MVP와 24번의 올스타 선정 기록을 남긴 카디널스 역사상 최고의 타자. 별명은 '바로 그 사람'(The Man). 알버트 푸홀스가 카디널스를 떠난 이후로 그를 넘어설 선수는 당분간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에 뮤지얼의 프랜차이즈 기록들은 불멸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전 미국 팬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선수로, 미국 국민 훈장까지 받을 정도이며, 당연히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 9. 에노스 슬로터(Enos Slaughter): 통산 타율 0.300과 2382안타를 남긴 우익수. 1946년 월드시리즈에서 평범한 단타임에도 1루에서 홈까지 파고들었던 광란의 질주로 유명한 허슬 플레이어이다. 다만 슬로터는 인종차별주의자로 악명높은 인물이었는데, 대표적인 사례로 1947년 재키 로빈슨이 데뷔하자 보이콧 주동을 비롯해 고의로 로빈슨의 다리를 노려 스파이크 태클까지 걸었던 적도 있다. 1985년 베테랑 위원회를 통해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 10. 토니 라 루사(Tony La Russa): 카디널스에서 16년 동안 월드 시리즈 우승 2회, 내셔널 리그 우승 3회, 플레이오프 진출 8회를 이끈 명장.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현대 야구사에 한 획을 그은 명감독이자 라루사이즘의 창시자로, 2011년 우승을 끝으로 은퇴한 뒤 2012년 영구결번되었다.
- 14. 켄 보이어(Ken Boyer): 10년간 카디널스의 3루수로 활약하면서 1964년 내셔널 리그 MVP 수상과 함께 그 해 월드 시리즈 우승을 이끌었으며, 감독직도 맡는 등 공로를 인정받아 영구결번되었다. 다만 명예의 전당에는 헌액되지 못하였다.
- 17. 디지 딘(Dizzy Dean): 1930년대 개스하우스 갱의 에이스로 한 시대를 풍미한 투수. 사실 괴짜로 더 이름이 높다. 부상 때문에 그다지 오래 뛰지는 못했다. 은퇴 후에는 카디널스와 같은 동네의 브라운스에서 비판적인 해설로 명성을 날리기도 했다.[30] 통산 150승에 불과하지만 전성기가 워낙 화려해서 명예의 전당에 투표로 입성했다.
- 20. 루 브록(Lou Brock): 통산 3023안타에 938도루를 기록한 원조 대도. 도루 기록은 훗날 리키 헨더슨에 의해 깨지지만 타이 콥의 도루 기록을 먼저 깬 것이 바로 루 브록이다. 팀의 전성기와 함께 하며 맹활약. 당연히 명예의 전당에 입성.
- 24. 화이티 허조그(Whitey Herzog): 통산 1281승을 거두면서 1980년대 카디널스의 성공을 이끈 명장으로, 명예의 전당에도 입성한 감독이다.
- 42(공동)
- 45. 밥 깁슨(Bob Gibson): 사이 영 상 2회, 내셔널 리그 MVP 1회, 월드 시리즈 MVP 2회 수상에 빛나는 카디널스 역사상 최고의 투수. 팀 역사상 최고 타자인 뮤지얼처럼 오직 카디널스에서만 뛴 프랜차이즈 스타이며, 1968년 세운 평균자책점 1.12라는 대기록과 월드 시리즈 7차전에서 두 번 승리를 기록했던 MLB 역사상 최고의 완투형 투수들 중의 한명이다.
- 85. 어거스트 부시(August Busch Jr.): 카디널스의 구단주로 새 구장도 짓고, 카디널스를 미국에서도 존경받는 야구팀으로 만든 공적으로 영구결번되었다. 어거스트 부시의 85세 생일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85을 영구결번하기로 결정했다.
- 🎙️. 잭 벅(Jack Buck): 1954년부터 2001년까지 세인트루이스 지역의 중계를 담당했던 스포츠 캐스터. 그가 세상을 떠난 2002년부터 그를 기리고 있으며, 아들인 조 벅 또한 FOX 스포츠에서 월드 시리즈 등의 전국 방송 중계를 담당하는 스포츠 캐스터로 활동 중이다
현역 선수 중 영구결번 후보는 역대급 포수인 야디어 몰리나(4번), 통산 167승의 애덤 웨인라이트(50번) 그리고 아름다운 10년을 남기고 떠난 알버트 푸홀스(5번)까지 세 명이 거론된다.
비공식 영구결번도 있는데, 마크 맥과이어의 25번은 맥과이어가 타격 코치로 돌아올 때까지 아무에게도 지급되지 않았다. 맥과이어는 약쟁이긴 했지만, 아직까지도 카디널스 선수들에게 존경을 받는다.[31][32]
또한 1980년대 대표 테이블세터였던 윌리 맥기의 51번[33] 과 2002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대럴 카일의 57번도 사실상 아무도 달지 않게 되었다.[34]
3.5. 기타
해야갤에서는 약관조라 놀림받는다. 홍관조와 약을 합친 별명인데, 이는 푸홀스가 약졸스로 놀림받는 것에서 시작된 것. 토니 라 루사 감독도 뛰어난 약사 정도 취급을 받는다. 이는 마이너리그에서 매우 저조하다든지, 아니면 도저히 뒤집힐 것 같지 않은 선수들이 카디널스에 와서 폭발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35] 유례에서 알 수 있다시피 진지하게 약물 구단이라고 까는 별명은 아니고, 장난 삼아 놀리는 것에 가까우므로 괜히 카디널스 팬이 처음 해야갤을 방문했다가 깜짝 놀라는 일은 없도록 하자. 해야갤에서 카디널스는 '선수들의 약 냄새가 경기장 내에 진동해서 관중들마저 발기부전에 걸리는 팀(...)', '포스트시즌이 되면 몰래 준비한 특제 약물을 먹이는 팀', '도핑 테스트에 걸리지 않는 특제 약물을 개발하여, 지하에 위치한 비밀 공장에서 생산하는 팀'이다. 특히 PS 경기에서 승리하면 "과학의 힘" 드립이 나온다.
'''최초로 방한 경기를 가진 MLB 팀'''이다. 날짜는 1958년 10월 21일.
7이닝 단축경기 더블헤더 실시일 하루 뒤인 8월 2일 이 팀에서 확진자가 3명이 나왔고, 거의 1주 뒤인 8월 9일 확진자가 추가로 발생되었다.
4. 계약 중인 마이너리그 구단
4.1. 트리플 A
4.2. 더블 A
4.3. 싱글 A
4.4. 루키
5. 40인 로스터 목록
- 별표 1개(*)는 현재 25인 로스터에 포함돼있지 않은 선수, 별표 2개(**)는 40인 로스터에 포함돼있지 않은 선수
- 각주의 '10-IL'은 10일 부상자 명단에 등재된 선수, '60-IL'은 60일 부상자 명단에 등재된 선수
[1] 원정 경기 중 상대팀이 빨간 계열 모자를 착용하는 경우 남색 바탕에 글자색이 빨간색인 모자를 사용하기도 하며, 홈 경기 중 일요일에는 남색 바탕에 우측의 구단 로고가 들어간 모자를 사용한다.[2] 53년까지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 60년부터 NFL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공용[3] 87년까지 NFL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95년 NFL 세인트루이스 램스와 공용[4] 11회 우승 플래그[5] 기존 팀명은 퍼펙터스(Perfectos)였지만, 붉은색 유니폼 때문에 카디널스라는 별명이 붙자 1900년부터 공식적으로 팀명을 카디널스로 변경했다. 참고로 현재 카디널스의 문양을 만든 사람은 구단 역사상 공헌이 가장 큰 인물 중 한 명인 브랜치 리키이다.[6] 별명은 '''Red Birds'''.[7] 다만 신시내티 레즈, 필라델피아 필리스 등 팀 컬러가 빨간색인 팀과의 원정 경기때는 검은색 모자와 헬멧을 착용한다. 또한 텍사스 레인저스가 빨간색 얼트 유니폼을 입고오면 그럴때도 검은색 모자와 헬멧을 착용한다. 다만, 이런 팀들과의 경기도 홈 구장 부시 스타디움에서 경기할때는 평소대로 빨간색 모자와 헬멧을 착용한다.[8] 1위 뉴욕 양키스 27회, 2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1회, 3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보스턴 레드삭스 9회. 오직 양키스와 카디널스만이 두 자릿수 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다.[9] 신시내티 레즈에서 뛰면서 카디널스와 여러 번 대결한 추신수는 "야구 잘하는 팀이다."라는 한 마디로 카디널스를 표현한 바 있다.[10] 보통 내셔널 리그에서 카디널스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3대 명문이라 부르는데, 나머지 두 팀이 번갈아 가며 양키스에게 우승 반지 13개를 헌납하면서 뉴욕에서 입지를 잃어 연고지를 이전한 것과 상당히 대비되는 부분이다. 월드 시리즈 승률에서도 다저스와 자이언츠가 4할대의 낮은 승률을 기록 중인 반면 카디널스는 5할 7푼 9리의 높은 승률을 자랑한다.[11] 카디널스의 2010년대 평균 관중 수는 41,808명이며, 1위는 다저스, 2위는 양키스이다.[12] 2010년부터 2019년까지 평균 관중 순위 4-6-6-2-2-2-2-2-3-2위에 올랐다.[13] 나중에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단장으로 부임하여 2019 MLB 사인 훔치기 스캔들이라는 대형 사건을 일으키는 그 사람이 맞다.[14] 마크 멀더는 2005년 딱 한 해만 제 몫을 했다. 2006년 성적은 17경기 93.1이닝 평균자책점 7.14로 되려 2006년 세인트루이스의 우승에 방해가 된 수준이고, 2007년부터는 부상에 시달리며 나오지도 못 했다. 그리고 오클랜드로 보낸 댄 하렌은 에이스급으로 성장하면서 사이영상 후보를 바라보기 시작했다.[15] 이 부문에서 유명한 또다른 팀이 메이저리그에 또 하나 있으니, 바로 보스턴 레드삭스이다. 세이버매트릭스와 함께 이런 정신적인 부분까지 동시에 추구한다는 점에서 두 팀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유능한 단장과 이를 지원한 능력있는 구단주가 있으며, 이 결과로 이 두 팀은 2010년대 가장 성공한 팀들이 되었다. 그 결과가 2013년 월드 시리즈를 포함한 성과들이다.[16] 결국 콜비 라스무스는 출장 기회가 줄어드는 것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터트리면서 토니 라루사가 경질되거나 라스무스가 트레이드 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스캇 롤렌 때와 마찬가지로 라스무스가 트레이드 되면서 마무리 된다.[17] 다만 아로자레나는 상술된 워크에식 문제가 발목을 잡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시즌 종료 후에 일어난 사건사고 등을 생각하면...[18] 이는 2015년에 마크 레이놀즈를 단기 영입까지 한 적이 있었을 정도로 맷 애덤스가 잦은 부상으로 인해 기대치만큼 성장하지 못했고, 결정적으로 좌상바로 전락한 여파로 인해 근 몇 년간 1루수난에 시달렸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19] 아이러니하게도 연고지 세인트루이스 자체는 팬들 매너와 상반되게 디트로이트, 오클랜드와 함께 범죄율이 높기로 악명 높은 도시다. 자세한 건 세인트루이스 문서 치안 부분 참조.[20] 카디널스는 1960년대와 1980년대, 레즈는 1970년대가 최대 전성기였고, 그 이후에도 두 팀은 딱히 대립할 만한 일은 크게 없을 정도였다.[21] 비슷한 예로는 고속도로로 차를 타고 막히지 않게 4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다저 스타디움과 애너하임 구장을 각각 홈구장으로 쓰는 지역 라이벌 LA 다저스와 LA 에인절스의 프리웨이 시리즈.[22] 카디널스 우승: 2011/2013, 자이언츠 우승: 2012/2014.[23] 물론 이 구단은 돈이 없는 팀이 절대 아니다. 다만 페이롤에 비해 좋은 효율을 뽑아내고 있을 뿐.[24] 이분의 아들이 전직 메이저리그 외야수 출신의 크리스 던컨으로 2006년엔 카디널스 소속으로 0.293의 타율과 22홈런, 43타점으로 혁혁한 공을 세우기도 했다. 이후 2011년부터 라디오 해설가로 활약했지만 2012년에 악성 뇌종양 판정을 받고 투병생활을 이어가다 2019년 9월 6일에 세상을 떠났다.[25] 게다가 그 첫 홈런을 내준 장본인이 바로 마무리였던 트레버 로젠탈이었고, 이후에도 로젠탈은 강정호에게 약한 모습을 보였다. 더 안습인 건 강정호에게 동점홈런을 맞기 전까지는 내셔널 리그 최고의 마무리로 이름날리고 있었는데 이때 이후로 그냥. 지못미...[26] 그 두 번째 홈런은 구장 좌측 2층의 빅맥존{Big Mac Zone}이라고 하는 곳에 떨어진 대형 홈런이었다.[27] 다만 인성은 개차반이었다고 한다.[28] 등번호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다만 선수 생활 말년이 되어서야 등번호 제도가 도입되었고 얼마 후 이적하는 바람에 실제 카디널스에서 번호를 달고 뛴 기간이 1년도 안 되기 때문에 결번되지 않았다.[29] 1946, 1964, 1967, 1982[30] 브라운스 선수들을 너무 까서 '야, 시바. 내가 지금 던져도 그것보다 잘한다.'라고 말했다가 빡친 브라운스에서 '말로만 털지 말고 와서 한번 던져보시져?'라고 반응하여 은퇴 6년 후인 1947년 브라운스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 등판한 적도 있다. 딘은 그 경기에서 4이닝 3안타 1볼넷 무실점의 피칭을 했다.[31] 맥과이어는 그나마 끝까지 사실을 숨기려 했던 새미 소사나 여전히 뒤가 구린 배리 본즈, 로저 클레멘스보다는 좀 더 솔직했다.[32] 또한 타격 코치로서 지도 능력은 발군이다.[33] 맥기 본인이 코치로 복귀하면서 달고 있다.[34] 2007년 교통사고로 사망한 불펜투수 조시 행콕의 32번도 2012년까지 비공식 영구 결번이었으나 2013년에 롭 존슨, 2014년부터 2017년 초반까지 맷 애덤스, 2017년 후반부터 잭 플래허티가 사용하고 있다.[35] 해외 쪽에서는 이런 특성을 Devil Magic, 의역하면 흑마법이라고 부르는 듯 하다. 다만 이 쪽은 팀이 2000년대부터 포스트시즌 진출할 때마다 팀이 의문의 각성을 하는 쪽의 내용도 묶어서 지칭하는 단어.